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오늘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입니다. 동시에, 가톨릭교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이 날이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가톨릭교회의 역사 안에서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오고 보편적으로 믿어왔던 진실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만 하더라도 충분한 예언적 암시들이 있습니다. “제왕의 딸들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사이에 있으며 왕비는 오피르의 황금으로 단장하고 당신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시편 45,10). “연기 기둥처럼 광야에서 올라오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몰약과 유향, 이국의 온갖 향료로 향기를 풍기며 오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아가 3.6). 이상의 구절들은 교회의 신학자와 설교자들에 의해 성모 승천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
특히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시편 132,8)라는 구절 역시 성모님의 승천에 대한 예언으로 지목되었는데, 성모님이 새로운 계약의 궤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계약의 궤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들이 있지만, 각설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 즉 성모님께서 “하늘에”(묵시 12,1) 나타나셨다고 기록하는데, 이는 성모 승천의 가장 큰 성경적 증거로 거론됩니다.
성모 승천은 신앙의 유산
3세기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오 주교는 성모님께서 선종하셨을 수도, 순교하셨을 수도, 또 죽음을 겪지 않으셨을 수도 있다는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성모님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지만, 이는 반대로 이미 그 이른 시기에 성모님께서 죽음을 겪지 않으시고 승천하셨다는 신앙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 여느 사람과 같은 최후를 당연하게 맞으셨다면 에피파니오와 같이 회의적인 입장에서도 “누구도 그녀의 마지막을 모른다”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동정녀께서는 선종하시어 묻히셨을 수도 있다. 그녀가 영예, 정결한 죽음, 동정의 왕관과 더불어 잠드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면 그녀는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순교자의 명성을 얻고 그 거룩한 몸이 세상에 빛을 발하며 축복 가운데 [안식하여] 계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에 따라 무엇이든 불가능한 것이 없으시니, 그녀는 계속 살아 계셨을 수도 있다. 누구도 그녀의 마지막을 모른다.” 2
5-6세기경에는 성모님의 마지막에 관한 전승을 반영하는 여러 문헌들이 다양한 언어로 등장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마리아의 떠나가심」(Transitus Mariae)입니다. 이 문헌에 따르면, 말년에 성모님께서는 천사로부터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이때 세계 각지에 있었던 사도들이 성모님께서 계신 곳에 한 데 모이는 기적이 일어났고, 성모님께서는 그 얼굴이 밝게 빛나시며 선종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장례 도중에 그리스도인을 혐오하는 유다인 예포니아스(Jephonias)가 성모님이 뉘여지신 침상에 손을 대어 장례 행렬을 방해하려고 했으나, 천사가 나타나 그 손을 잘라버렸습니다. 예포니아스는 회개하여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신 거룩하신 마리아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외쳤고, 베드로가 예포니아스에게 화답했습니다. “그녀로부터 태어나신 분의 이름으로, 그대의 떨어져 나간 손이 다시 붙을 것이오.” 그리고 예포니아스는 다시 손이 회복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기적이 일어나자, 사도들은 침낭을 들고 게쎄마니의 새 무덤에 그녀의 고귀하고 거룩한 시신을 뉘였다. 또한 보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거룩한 무덤에서 감미로운 향이 나더니, 사흘 동안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그녀로부터 태어나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흗날이 되자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그때부터 모든 사람이 그녀의 흠 없고 고귀한 몸이 낙원으로 옮겨졌음을 알게 되었다.”
성모 승천은 이미 6세기 교황 성 세르지오 1세 때부터 교회의 전례에서 기념되어왔습니다. “교회의 전례가 가톨릭 신앙을 낳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나무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거룩한 경배의 실천이 신앙으로부터 싹트는 것이기 때문에”, 전례에서 기념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 기념이 반영하는 신앙이 교회 안에 만연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교회 안에서 성모 승천이 보편 신앙임이 드러나자, 수많은 교부들이 이 신앙을 더욱 열렬히 옹호했습니다. 8세기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은 성모님께서 죽음에 방치되지 않으시고 즉시 영원한 생명을 영위해야 하셨음이 마땅함을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출산 때 동정을 온전히 보존하신 그녀가 죽음 이후에도 그 몸을 모든 부패로부터 자유롭게끔 보존하셔야 함이 마땅하였다. 어린아이셨던 창조주를 가슴에 품으셨던 그녀가 천상 성막에 거하셔야 함이 마땅하였다. 성부께서 취하신 정배께서 천상 신방에 거하셔야 함이 마땅하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아드님을 목도하심으로써 아드님을 낳으실 때 피하신 그 고통의 칼이 그 마음에 꿰찔리신 분께서 성부와 함께 좌정하신 분을 목도하셔야 함이 마땅하였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아드님께 속한 것을 소유하시고 모든 피조물로부터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종으로 영예를 받으셔야 함이 마땅하였다.” 4
같은 시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제르마노 총대주교 역시 강론 중 성모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록된 바대로 님은 아름답게 나타나시며, 님 동정 육신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온전히 순결하시며, 그 전체가 하느님의 거처가 되었사오니, 그 후로는 먼지가 되어 소멸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시도소이다. 여전히 인간이시나 그 몸이 부패되지 않고 진실로 살아있는 데다 영광스러우며 손상되지 않고 완전한 삶을 나누는 천상의 생명으로 변화되셨나이다.” 5
이후로도 수많은 걸출한 성인 학자들 곧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 대 알베르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베드로 가니시오 등 수많은 이들이 성모 승천을 확증해주었습니다. 6
이에 따라, 교황 가경자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에 대한 신앙이 가톨릭교회 안에 보편된 신앙인지 먼저 조사를 거친 이후, 1950년 11월 1일 사도헌장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하여 성모 승천을 믿어야 할 천상 계시, 곧 신앙의 유산으로 선언했습니다.
“거룩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이러한 모든 증거와 고찰은 그 궁극적인 토대인 성서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와 고찰은 하느님의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신성한 아드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합되어 계시고 항상 아드님의 몫을 나누는 것처럼, 우리 눈앞에 있는 그대로와 같이 하느님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며 젖을 먹이시고 팔에 껴안으시며 가슴에 품으셨던 분께서 이 지상 생애 이후에 영혼은 차치하더라도 육신으로 그리스도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보인다.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시는 분으로서 당신의 영원하신 아버지뿐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공경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또한 무덤의 부패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머니께 이러한 크나큰 영예를 부여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권능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이러한 방식을 행하셨다고 믿어야만 한다.
우리는 특히 2세기 이래로 거룩한 교부들은 동정 마리아를, 새 아담 아래 속하셨으면서도 원복음[protoevangelium, 창세 3,15]에서 예언된 대로 마침내 이방인들의 사도[성 바오로]의 저술에서 항상 함께 언급되는 바 죄와 죽음에 대한 가장 완전한 승리를 가져올 지옥의 적과의 투쟁에서 새 아담과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신 새 하와로 지목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이 승리의 본질적인 부분이자 최후의 표지였던 것처럼, 복되신 동정녀와 그 천상 아드님께 공통된 투쟁은 동정녀의 몸이 영광스럽게 됨으로써 끝맺어야 한다. 동일한 사도[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1코린 15,54]
따라서 하느님의 경외하올 어머니는 영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이고 동일한 예정의 결정으로, 숨은 방식으로 연합하셨으며, 원죄 없이 잉태되시고 천상 모성의 가장 완전한 동정녀셨으며, 죄와 그 결과에 대하여 온전한 승리를 거두신 천상 구속주의 고결한 동반자이신 데다, 마침내 어머니께서 받으신 최고 정점의 특전으로서 무덤의 부패로부터 자유롭게 보존되셔야 하며, 당신 아드님과 같이 죽음을 극복하신 어머니께서는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취하여져, 모후로서 모든 시대의 불멸하는 왕이신 아드님의 오른편에 탁월하게 좌정하실 수 있다.
계시된 진리에 대한 더욱 완전한 지식을 향하여 무류하게 인도하시는 진리의 성령께서 거하시는 보편 교회는 수세기에 걸쳐 자신의 믿음을 여러 차례 표현해 왔고, 전 세계의 주교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육체적 승천에 대한 진리가 천상 가톨릭 신앙의 교의로, 즉 신앙인들의 정신 가운데 철저하게 뿌리내리고 가장 먼 시대부터 교회 경배에서 인가되어 왔으며 계시된 다른 진리들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신학자들의 작품과 학문과 지혜를 통하여 훌륭하게 해설되고 설명되어 온 바 성서에 근거한 진리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청원하고 있기에, 동정 마리아의 이 뛰어난 특전을 장엄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하느님 천상 섭리의 계획에서 정하여진 순간이 이미 도래하였다고 우리는 믿는다.
…… 이러한 이유로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우리 자신의 권위로, 우리는 이것이 천상 계시의 교의라고 천명하고, 선언하고, 정의하는 바, 하느님의 티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어머니께서는 지상 생애를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에 받아들여지셨다.
따라서 만일 누구라도 하느님께서 금지하신 바 우리가 정의한 것을 감히 고의로 부인하거나 의심을 제기한다면, 천상 가톨릭 신앙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갔음을 그에게 알리라.” 7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주는 사건
성모님의 승천이 성경에서 예언되고, 초대 교회 때부터 믿어왔으며, 전례에서 기념되고, 수많은 걸출한 성인 교부 학자들이 옹호했으며, 교회의 보편된 신앙의 일부이자 가르치는 교회가 아주 분명하게 선언한 진리임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렸다”라는 ―사도 성 요한의 제자인 성 폴리카르포의 제자― 성 이레네오의 확고한 가르침,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아담이시듯이(로마 5,19 참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새 하와라는 이 사도적인 가르침은 성모 승천의 진리로서 더욱 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8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성모 승천 교의의 더 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모님 이외에도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은 성인들이 구약성경에 등장합니다. 에녹(히브 11,5 참조)과 엘리야 예언자(2열왕 2,1-5 참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승천은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보다도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의 미사 감사송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하늘에 오르신 분, 하느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완성될 주님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으로서 이 세상 나그넷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성모님께서 교회의 “시작이며 모상”이고, 그 승천이 우리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이 된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신다.” 9
즉 성모님께서 승천을 통하여 받으신 영광은 교회가 받게 될 영광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모님을 교회의 “표상”이라고 언급합니다. 성모님께로부터 교회의 미래를, 우리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모님의 승천은 주님의 승천과는 분명 다릅니다. 주님의 승천은 라틴어로 ‘올라감’이라는 뜻의 아셴시오(ascensio)이지만, 성모님의 승천은 ‘받아들여짐’이라는 뜻의 아숨프치오(assumptio)라고 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는 죽음을 이기고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만으로는 ‘아버지의 집’에, 하느님의 생명과 지복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분께서 ‘인간 본성’을 자신 안에 받아들이시고, 저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생명과 지복에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최초로 부활하여 승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은 죽음을 이기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맏물”이십니다. 10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1코린 15, 22-23)
성모님의 승천, 곧 성모님의 받아들여짐은 맏물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리스도께 속한 교회 또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지인 것입니다. 올라가신 사건 뒤에 받아들여진 사건이 뒤따를 것임을 성모님의 승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셈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받습니다. 과연 사도 성 바오로의 말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에페 2,6). 교황 비오 12세가 성모 승천 교의를 선언한 1950년, 세상에는 불과 몇 년 전까지 벌어졌던 제2차 세계 대전의 상처가 여실했습니다. 나치는 유다인들과 여러 사람들을 몰살했을 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우리는 세례 받은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순교한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수녀(에디트 슈타인)와,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대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광범위한 잔학상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잔학 행위를 반대하고 수천 명의 유다인들을 보호해주었던 비오 12세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복되신 동정녀의 승천이 보여주는 “확실한 희망과 위안의 보증”을 통하여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이웃에게 헌신하는 인생의 가치, 우리의 존재 전체가 지니는 진정한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와 나, 만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영광스런 모범을 묵상하는 이들이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행하고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데 전적으로 헌신하는 인간 삶의 가치를 더욱 더 확신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유물론의 공허한 가르침 및 그러한 가르침에 뒤따르는 도덕의 부패가 덕목의 빛을 꺼트리고 사람들 사이의 불화를 부추겨 사람의 삶을 붕괴시키려 위협하는 동안에,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얼마나 고귀한 목적을 향하여 운명지워졌는지를 이러한 장대한 방식으로 만인이 명백하게 목도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육체적 승천에 대한 믿음이,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더 강하게 하고 더 많은 결과를 자아내게끔 하여 주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11
성모 승천 대축일의 전날인 8월 14일 어제 기념된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께 대한 비할 데 없는 정성을 지녔습니다. 콜베 신부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줄 수 있었던 그 사랑은 바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즉 하와의 죄에 따른 모든 귀결로부터 면제되신 새 하와께 대한 크나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콜베 신부는 자신이 성모 승천 대축일에 죽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콜베 신부는 그 전생애를 통하여, 그가 순교한 1941년으로부터 꼭 10년도 채 되지 않은 뒤에 선언될 성모 승천 교의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드러내주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8월 15일은 민족이 일제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기쁜 날이나, 그러한 기쁨의 와중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만인의 진실된 해방을 가리키는 이 위대한 신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 교황 비오 12세,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26항 참조. [본문으로]
- Frank Williams, trans., The Panarion of Epiphanius of Salamis: Book II and III (Sects 47-80, De Fide) 78. Against Antidicomarians, 78. 23 (Leiden: E.J. Brill, 1994), p. 619,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교황 비오 12세,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20항,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St. John Damascene, Encomium in Dormitionem Dei Genetricis Semperque Virginis Mariae, Hom. II, n. 14; cf. also ibid, n. 3,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St. Germanus of Constantinople, In Sanctae Dei Genetricis Dormitionem, Sermo I,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교황 비오 12세,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29-38항 참조. [본문으로]
- 교황 비오 12세,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38-41항 및 44-45항,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St. Irenaeus, Against Heresies, 3, 22, 4,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 「가톨릭교회 교리서」, 972항. [본문으로]
- 「가톨릭교회 교리서」, 661항. [본문으로]
- 교황 비오 12세, 사도헌장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11.1., 42항, ofelixculpa.com 번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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