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는 소위 “거짓” 기적의 패에 대한 경고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제작년 초,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왜곡된 성물에 대한 주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표했고, 수원교구 역시 독자적인 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했습니다. 이에 한국 교회 안에서는, 말하자면 ‘성물 세심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서 너도 나도 자신이 구매하거나 선물받은 이 성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하며, 성물방에 문의하기까지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과 같은 교회 언론 역시 이에 대한 논란을 적극 보도하며 “사목자와 신자 개개인의 점검”을 요구했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에 따르면, 기적의 패의 경우 윤곽이 흐릿하거나 기도문이 일부 변형된 것, 뒷면의 별 모서리 갯수가 5개가 아니라 6개인 것, 십자가와 M 자의 끝부분에 뿔 모양이 있거나 교차된 방향이나 각도가 이상한 것, 컴퍼스가 있는 것, 칼이 성모 성심을 관통하지 않은 등등의 디자인의 기적의 패는 “하느님 · 성모님을 모독하는 글자, 형상”으로서 거짓된 기적의 패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가짜 뉴스입니다. 인가 받지 않은 사적 계시 및 음모론자들의 억측, 사이비 도상학과 지적 게으름, 편집증스럽고 강박적인 망상에 근거한 헛소문입니다.
누군가는 ‘아니, 지금 주교회의의 판단을 그런 식으로 비난한단 말인가?’ 하며 감정에 북받쳐 반발심부터 들지 모르겠습니다. 독성죄를 방임하는 나이브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팩트는 항상 감정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팩트 체크를 해봅시다.
기적의 패 디자인은 처음부터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기적의 패 디자인은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가 목격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환시에 근거합니다.
“대림 제1주일 전날이었던 1830년 11월 27일 토요일, 저녁 5시 반에 깊은 침묵 가운데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단 우측에서 비단 드레스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 요셉 성화 가까이에 복되신 동정녀가 보였습니다. 그녀의 키는 중간 정도였고 얼굴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게 제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동정 성모’라고 부르는 형태와 같이 평평한 소매를 지닌 밝은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서 계셨습니다. 머리는 양쪽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띠가 묶여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레이스로 장식된 일종의 머리띠가 머리카락에 평평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얼굴은 거의 드러나 있었고, 발은 지구 모양, 절반의 지구 모양 위에 놓여 있었는데, 저한테는 지구 모양의 절반만 보였습니다. 허리띠 높이까지 올려져 있는 손에는 지구 모양(우주의 형상)을 아주 쉽게 들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지구 모양을 우리 주님께 봉헌하시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 제가 그 모습을 관상하느라 바빴는데, 동정 성모께서 저를 내려다 보셨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네가 보고 있는 이 지구는 전 세계, 특별히 프랑스와 각 사람들을 상징한다.’
…… 동정 성모의 주위에 어느정도 타원형이 묘사되었고, 거기에 우리는 금색 글씨로 써진 이러한 말을 읽었습니다.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O Marie, conçue sans péché,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à vous.].’
그러자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두드려라, 이 모습에 따라 패를 두드려 만들어라. 이 패를 착용하는 사람들, 특히 목에 거는 사람들은 크나큰 은총을 관대하게 받을 것이다.’” 1
기적의 패 뒷면에 대해서, 가타리나 성녀의 고해 사제 알라델 신부는 성녀로부터 직접 다음과 같은 정보를 받았습니다.
“묘사가 뒤집어졌고, 그녀는 반대편에 M 자에 십자가가 얹어진 것을 보았으며, 그 밑에 막대기가 있었고, 마리아의 모노그램 아래에는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이 있었는데, 전자[예수 성심]는 관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하나[성모 성심]는 칼로 뚫려 있었다.” 2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가타리나 성녀가 목격한 환시와 기적의 패의 디자인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가타리나 성녀가 목격한 환시에서는 성모님께서 지구 모양을 들고 계신데, 정작 기적의 패 앞면에는 양 팔을 벌려 빛을 비추는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제작 당시에 지구 모양을 들고 계신 성모님의 모습이 신자들에게 혼란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사람들에게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모습으로 더 친숙한 모습으로 디자인을 변경했기 때문입니다. 3
또한, “가타리나 수녀의 노트에는 마리아의 모노그램과 두 성심을 둘러싼 열두 개의 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패의 뒷면에는 항상 나타나 있습니다.” 기적의 패 뒷면의 별들 역시 가타리나 성녀의 환시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며 임의로 추가된 것입니다. 알라델 신부의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이러한 세부 사항은 발현 도중에 수녀에게 구두로 전달된 것임이 도덕적으로 확실하다”는 메모를 덧붙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집자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4
즉, 기적의 패 디자인은 애시당초 가타리나 성녀의 ‘증언’에 바탕한 것이고, 그러한 증언에는 세세한 십자가와 모노그램의 디자인이 어때야 하는지, 교차되는 각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어때야 하는지 같은 세부 사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기적의 패는 제작될 당시 가타리나 성녀가 증언한 모습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별 역시 후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별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별 모서리가 몇 개여야 하는지,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거짓” 기적의 패 음모론의 기원
물론, 기적의 패 디자인이 애시당초 세부적인 묘사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떤 알 수 없는, 악의를 가진 비밀스러운 자들―사탄숭배자? 프리메이슨? 뭐가 되었든―에 의해 고의적인 독성을 첨가한 기적의 패를 유포했다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알 수 없는, 악의를 가진 비밀스러운 자들이 독성적인 거짓 기적의 패를 유포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있기는 할까요? 어디서 출발한 주장일까요?
감사하게도, 기적의 패를 판매하고 있는 해외의 가톨릭 단체 중 하나인 ‘세인트 폴 스트릿 에반젤리제이션’(Saint Paul Street Evangelization)에서 이와 관련된 무수한 사실들을 조사하고 종합하여 공개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2002년, 프랑스 뤼드박(Rue de Bac)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뤼드박의 기적의 패 성모 경당과, 국제적인 전통주의 가톨릭 시민 협회인 ‘전통 가족 재산’(Traditon, Family, Property; 약칭 TFP) 사이에 마찰이 있었습니다. TFP는 기적의 패 성모 경당에서 제작하는 기적의 패와 디자인이 약간 다른 자체적인 기적의 패를 제작하여 홍보하고 기부금을 모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적의 패 성모 경당과 관련이 있는 캠페인인지에 대해 성모 경당 측에 너무 많은 문의 편지가 들어왔고, 주임사제 다니엘 플랑쇼 신부(Fr. Daniel Planchot)는 TFP의 기적의 패 판매 및 모금과 성모 경당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습니다.
“노트르담드라메다이미라퀼뢰즈[기적의 패 성모] 경당의 책임자로서, 전통 가족 재산 협회가 기적의 패 및 그 메시지를 이용한 9일 기도 전단지를 배포한 이후 우리가 이에 대한 많은 민원을 접수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이 전단지는 20~175 [유로]어치를 기부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경당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협회와 어떠한 상관도 없음을 강하게 확인하는 바입니다!”
몇 년 후인 2009년 6월 1일, “다니엘”(Danielle)과 “마리피에르”(Marie-Pierre)라는 익명의 사람들이 받았다는 사적 계시를 홍보하는 “성 미카엘 대천사와 수호 천사들”(Saint Michel Archange et Les Anges Protecteurs) 웹사이트가 등장했습니다. 같은 해 7월 27일과 8월 2일 사이에, “다니엘”은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이 사적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니엘의 사적 계시 주장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에 프리메이슨이 침투하여 거짓 기적의 패를 제작하여 퍼뜨렸다고 합니다. 이 거짓 기적의 패는 기존의 기적의 패와는 다르게 뒷면의 마리아 십자가 꼭대기에 별이 위치하여 있기에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에서 “상단에 별 한 개 있는 것”이 “루시퍼의 아침별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른바 “거짓” 기적의 패 디자인은 사실 2002년 당시 TFP에서 제작했던 바로 그 기적의 패의 디자인이었습니다.
2010년, 실비 데글(Sylvie Daigle)이라는 이름의 여성 블로거는 “성 미카엘 대천사와 수호 천사들” 웹사이트의 내용에 몇 가지를 덧붙여 유포했습니다. 여러 프랑스 언론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처럼―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데글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일러스트로 만들어 재생산했습니다.
이후 “거짓” 기적의 패에 대한 논란이 이탈리아어권 및 특히 영어권으로 인터넷 상에서 퍼져나갔고, 아무런 권위도 없는 개인들의 근거 없는 추측에 따라 “거짓” 기적의 패에는 사탄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느니, 십자가와 M이 교차되는 지점이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은 사탄이 그리스도를 앞서는 것을 의미한다느니, 칼이 성모 성심을 제대로 꿰뚫지 않고 있다느니, 오만가지 강박적인 잡설들이 생겨났습니다.
2015년이 되어 “거짓” 기적의 패 음모론은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는데, “거짓”에는 마리아 십자가 하단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컴퍼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에서 말하는 “나침반”은 바로 이 컴퍼스(compass)를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컴퍼스가 아니라, 아베 마리아(Ave Maria)의 앞글자 A과 M을 겹쳐 놓은 모노그램을 혼동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네티즌들에 의해 지적되어 이 주장은 금새 사그라드는가 했지만, 저명한 연설가인 아이작 메리 릴리아 신부(Fr. Isaac Mary Relyea)의 이름을 위시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프리메이슨 컴퍼스 음모론을 다시금 유포하면서 퍼져나갔고, 2017년 필리핀 노발리케스 교구 구마사제 암브로시오 레가스피 신부(Fr. Ambrosio Legaspi)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른바 “악마 묵주”와 함께 “컴퍼스가 새겨진 프리메이슨 기적의 패”를 경고하면서 이 음모론을 더 많은 미디어가 보도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10월에 이르러서도 미국 뉴저지주 강연에서 신비주의자 미셸 로드리게 신부(Fr. Michel Rodrigue)가 다시금 “거짓” 기적의 패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이― 경고하면서 이 음모론은 겉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세인트 폴 스트릿 에반젤리제이션은 “거짓” 기적의 패 음모론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 해당 주장은 서로 경쟁하는 두 조직 사이에 벌어진 공공연한 분쟁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2. 해당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사적 계시 주장에 기원을 두고 있다.
3. 해당 주장은 대부분 무비판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4. 해당 주장의 진실성과 역사가 매우 신속하게 모호해졌다.
5. 현대 미디어가 적절한 조사도 없이 정보를 퍼뜨렸다.
요약하면, “거짓” 기적의 패 음모론의 기원은 자신이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프랑스 여인이었으며, 그 계시는 가톨릭교회 안에 프리메이슨이 침투했다는 음모론에 기반합니다. 서로 전혀 상관 없는 것들을 연관 지으려고 하는 (십자가의 갈라진 끝이 사탄의 머리를 묘사한다는 등) 사이비 도상학,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해보려 하지 않은 채 아무 말이나 덥석 덥석 믿는 지적 게으름,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려 한다는 점에서 편집증스럽고, 가타리나 성녀의 환시에도 근거하지 않은 세부적인 묘사를 하나 하나 의심하고 따져 보려 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강박적이며,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한 망상에 불과합니다.
기적의 패 앞면의 기도문이 반드시 프랑스어 원문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도 우스운 주장입니다. 제작 여건에 따라서 일부 단어가 생략될 수 있고, 언어에 있어서도 라틴어나 영어 등 그 외의 언어로 번역된 기적의 패도 흔합니다. 번역의 과정에서 같은 언어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안타깝게도 교구와 가톨릭평화신문이 주장하는 “거짓 성물”의 또 다른 사례인 “악마 묵주”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프리메이슨의 컴퍼스가 새겨진 거짓 기적의 패’를 경고하는 바로 그 암브로시오 레가스피 신부가 “악마 묵주”에 대해서도 경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솔직히, 이 사실만으로도 “악마 묵주” 논란 역시 신빙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할만 합니다.
소위 “악마 묵주”라고 제시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된다는 이 플라스틱 묵주들은 확실히 조악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상단에는 전통적인 “INRI”라는 이니셜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사탄숭배와 독성적인 의도를 가진 “악마 묵주”라고 판단할 객관적인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뱀의 머리”는 그냥 의미 없는 장식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기적의 패 십자가 끝이 갈라진 것을 보고 누구는 “사탄의 머리”를 상상하지만, 누구에게는 그냥 ‘끝이 갈라진 십자가’일 뿐이듯이 말입니다.― 오망성과 태양 광선이 우상숭배를 상징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근거가 있을까요?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실제 거짓 성물들은 분간하기 매우 쉽다
물론, 실제로 가톨릭교회에서 분열된, 교회에서 금지한 거짓 사적 계시를 추종하는 사이비 컬트 단체에서 거짓 성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은 자신들의 거짓된 사적 계시를 결코 숨기지 않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성물도 기존의 성물을 교묘하게 변형한 것이 아니라 아예 디자인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것들입니다.
예컨대 교회에서 금지당한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을 추종하는 미국 로사리오의 성모회에서 유포하는 기적의 패의 경우, M 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예 자신들만의 다른 상징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의 성물들도 기존의 성물과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측 기사에서는 “가짜 기적의 메달을 구별해내기가 쉽지는 않다. 워낙 변형된 모양이 다양한 데다, 막상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고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변형된 모양이 그렇게 다양하지도 않고―대부분 하나의 컬트 단체 당 한두 개 정도의 거짓 성물만을 주의하면 되는 데다, 그들 각각은 일관된 디자인을 고수하기 때문―,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전혀 없습니다. 애당초 그들은 그렇게 교묘하게 행동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거짓 메시지를 홍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들이니 떳떳하면 떳떳했지 교묘할 리가 있겠습니까….
교구와 교회 언론은 ‘성물 세심증’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적의 패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사적 계시에서 비롯된 교회 미술은 그렇게까지 일관된 디테일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예수 성심의 환시를 목격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가 직접 자신이 본 예수 성심을 묘사한 것과, 일반적인 예수 성심 성화의 묘사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자기 집에 있는 예수 성심 성화상을 두고서 ‘가시관은 성심 주변을 둥글게 에워 싸야 하고… 세 개의 못이 묘사되어야 하고… 성심 가운데 ‘charitas’(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적혀 있어야 하고… 성심 주변에 예수, 마리아, 요셉, 안나, 요아킴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이거 거짓 성물 아니야?’라고 투덜대지 않습니다.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의 환시에 근거한 자비의 예수 성화는 또 어떻습니까? 파우스티나 성녀 생전인 1934년에 그려진 자비의 예수 성화와 성녀 사후에 그려진 자비의 예수 성화 역시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전자의 경우, 성화 속 주님의 손과 발에는 오상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있습니다.
또 서로 주님의 시선이 전혀 다른데, 파우스티나 성녀는 자신의 일기에서 증언하길 주님께서 자신에게 “이 성상화에서의 나의 눈길은 십자가 위에서의 나의 눈길과 똑같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눈길이 전혀 다른 후자는 ‘거짓 성화’일까요? 5
터무니 없는 소리입니다.
이렇듯 교구와 교회 언론, 사목자와 평신도들이 부추기고 있는 ‘성물 세심증’은 사실 관계와 이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불합리한 넌센스와 무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 안에서 도상의 디테일이 변형을 겪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교회는 이러한 일을 두고 경고하거나 단죄한 적이 없습니다.
서울대교구의 이름을 위시하며 가톨릭교회가 장엄하게 선언하고 보편 통상 교도권으로 가르친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에 대한 진리 6를 “복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든다”, “‘이게 정말 주님의 정신일까’ 하는 점에서 조금 의심이 든다”, “하느님을 이렇게 잔정머리 없는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오히려 독성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완전 강박증이다” 따위의 말로 7멸시하는 사제는 묵인할 뿐더러 오히려 찬사를 보내면서, 거짓 사적 계시, 근거 없는 억측과 망상에 근거한 ‘거짓 성물 음모론’은 사목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너도 나도 세심에 세심을 기울이는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허황된 음모론 말고, 사실에 기반한 문제들에 신경을 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십자고상 없이 미사를 거행하는 본당들에 대해서 사목자와 평신도들이 신경 쓴 적이 있습니까? 시작 예식을 주례석이 아니라 곧바로 제대 앞에서 하는 사제들은 여전히 허다합니다. 8 미사 독서와 강론을 독서대가 아니라 제대에서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9 이 외에도 전례에 대해 우리가 조용히 무시함으로써 한국 교회 안에 만연한 수많은 지침 위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그 누구도 비록 사제일지라도 결코 자기 마음대로 전례에 어떤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지 못한다” 10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얼마나 무색합니까? 11
“거짓” 성물 논란이 가져다주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교구와 교회 언론이 아주 조금만 주의를 환기시켜도, 교회 안에 산재한 ―교리나 전례 밖에도―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사목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서서 활발히 논의하고 검토하여 자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그런 가능성이 고작해야 망상적인 사이비 음모론에 발휘되어 수많은 신자들이 시간과 에너지를 쓸 데 없는 문제에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구와 교회 언론은 조속히 “거짓” 성물 음모론에 대해 사실 관계를 재검토하고 정정하는 공문을 발표하고 보도해야 합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간단한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은 채 수많은 신자들을 허황된 두려움에 빠지게 만든 이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낯부끄럽다 못해, 한숨만 나오는 현실입니다….
- M. Aladel, La Médaille Miraculeuse: origine–histoire–diffusion–résultats (Paris: Pillet et Dumoulin, 1878), pp. 74-76. [본문으로]
- Ibid., p. 73. [본문으로]
- Ibid., pp. 85-86 참조. [본문으로]
- Ibid., p. 76. [본문으로]
- 성녀 M. 파우스티나 수녀,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자비 일기」(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 2018), p. 223, 326항. [본문으로]
- 트리엔트 공의회, 제13회기, 규범 제11조, ofelixculpa.com 번역 :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받기에 믿음만이 충분한 준비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파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위대한 성사를 합당하지 않게 받아 죽음과 단죄에 이르지 않도록, 이 거룩한 공의회는 고해 사제를 얻을 수 있을 때, 대죄로 양심에 눌린 자들이 아무리 스스로 상등통회를 했다고 생각할지라도, 반드시 미리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선언한다. 더욱이 누구든지 이와 모순되는 내용을 주제넘게 가르치거나 설교하거나 완고하게 주장하거나 공개 토론에서 변호한다면 그는 <그 사실 자체로> 파문당할 것이다. [본문으로]
- The 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Part 2: The Holy Eucharist, 146, ofelixculpa.com 번역 : 우리 주님께서 은총의 변함없는 원천으로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모든 신성한 신비 중에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거룩함으로 가득 차 있는 이 흠숭하올 성사에 대한 신성모독적인 남용보다 더 끔찍한 복수를 하느님께서 예비해 두신 범죄는 없다. 위에서 오는 지혜로 비춰진 사도[바오로]는 이러한 무서운 결과를 분명히 보고 강조하면서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않는 자”의 죄악이 중함을 선언했다. 사도는 즉시 덧붙였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이 천상 성사에 따른 거룩한 영예에 깊이 감동받아 이에 참여함으로써 풍성한 은총의 열매를 얻고 하느님의 의노를 피할 수 있도록, 사목자는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으로 [성체성사의] 그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잘 고안된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 [본문으로]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117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마찬가지로 제대 위나 그 주위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는 십자가를 놓는다. [본문으로]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0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입당 노래가 끝나면 사제는 주례석에 서서 회중 전체와 함께 십자 성호를 긋는다. [본문으로]
-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8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 독서들은 언제나 독서대에서 선포한다. [본문으로]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 22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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